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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일기

11월27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1월27일 1966년 요르게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전날 강 하류에 답사 나갔음) 나는 철야 보초 임무를 명령했다. 아홉 시, 라 파즈로부터 첫번 찦이 도착했다. 그 차편으로 코코, 화킨, 우르바노와 볼리비아인 이학도 에르네스토가 왔다. 코코가 다시 나가서는 리카르도, 브라올리오, 미켈과 볼리비아인 인티를 차에 태우고 왔다. 이제 우리는 내무(內務)를 보살필 요르계를 포함하여 12명이 모였다. 코코와 로폴로는 접선 책임을 맡을 것이다. 리카르도가 좀 불쾌한 소식을 전했다. 볼리바이에 있는 치노(볼리비아 공산당 지도자)가 날 만나길 원하며 20명을 나에게 보내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건 좀 곤란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에스타니슐라노(볼리비아 공산당 지도자)를 끌어넣기도 전에 우리의 투쟁을 국제화하게 될.. 더보기
11월25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1월25일 1966년 관측소로부터 2,3인이 탄 찦차 한대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들은 말라리아 통제반으로 혈액 표본을 검출하자마자 떠났다. 파쵸와 롤란도가 밤늦게 답사에서 돌아왔다. 그들은 지도에 표시된 시내를 발견, 그 곳을 조사했다 한다. 더보기
11월23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1월23일 1966년 관측소를 설치했다. 수색이나 번거로운 방문을 사전에 경고하기 위해서다. 두 명이 정찰을 나간 사이, 나머지 사람들은 3시간씩 보초를 섰다. 뽐보와 마르코스는 캠프 예정지역을 조사하러 갔다. 더보기
11월22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1월22일 1966년 투마, 요르게와 나는 강둑(낭까와주)을 따라 올라가 새로운 시내를 발견했다. 이 곳에 변화 없음. 더보기
11월21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1월21일 1966년 사람이 늘고서 첫날. 비가 심하게 내려 새 캠프로 이동하면서 흠뻑 젖었다. 텐트를 트럭의 방수막으로 썼으나 빗물을 완전히 막진 못했다. 우리는 매어다는 나일론 그물침대를 갖고 있다. 무기도 더 도착했다. 마르코스는 개런드(반자동 소총)를 갖고 있고 롤란도는 재고품에서 M-1소총을 지급받게 될 것이다. 요르게는 집에 농장 일을 감독할 것이다. 로돌포에게 믿을 수 있는 농장 경영자를 찾도록 요청했다. 가능한 한 오래 이 농장을 확보해야 했다. 더보기
11월20일 - 체 게바라 일기 11월20일 1966년 정오에 마르코스와 로란도가 도착, 모두 6명이 되었다. 다른 네 사람이 다음주 내에 도착할 거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일행과 함께 로돌포도 왔는데 내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파피가 그에게 여기 이것은 지시위반이다. 나는 마닐라(아바나의 암호)에 보내는 서신에 몇 가지 충고를 적었고 또한 파괴에게는 그의 질문에 답하는 편지를 썼다. 로돌포는 내일 아침 일찍 돌아가기로 했다. 더보기
11월19일 - 체 게바라 일기 11월19일 1966년 라 파즈로부터 뉴스 없음. 사냥꾼들이 나타나는 토요일이어서 방 안에 머물다. 더보기
11월16일 - 체 게바라 일기 11월16일 1966년 동굴을 완성, 위장했다. 오솔길만 위장하면 된다. 그 곳에다 물건을 옮기고 내일 입구를 통나무와 진흙으로 얽어 덮어 두고 방치할 것이다. 이 동굴을 제1호라고 부르기로 하고 '서류 I'에다 위치를 그려 놓다. 더보기
11월14일 - 체 게바라 일기 11월14일 1966년 캠프에서 일주일. 파쵸는 왠지 적응을 못하고 서글픈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회복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물건을 저장하고 은닉할 수 있는 동굴을 파기 시작했다. 통나무 살태를 엮어 위장하고 습기를 방지할 작정이다. 굴은 1.5미터 가량 팠고 발굴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더보기
11월13일 - 체 게바라 일기 11월13일 1966년 일요일. 몇 명의사냥꾼들이 우리가 있는 곳을 지나갔다. 얄가라냐스네 노동자들이었다. 산사람들인데다 젊고 미혼자들이라 보충원으로 이상적인 자들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