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체 게바라의 일기

11월12일 - 체 게바라 일기 11월12일 1966년 우리는 제2진의 동지 6명이 도착하게 되면 야영할 적당한 장소를 답사했다. 우리가 선택한 지점은 자그마한 고지의 경사면 위로부터 100미터 가량되는 곳이다. 가까이에는 식량과 나머지 물건들을 저장하는 동굴로 사용할 수 있는 협곡이 있다. 이제는 우리는 일단 분리한 2인조의 3그룹 가운데 제1조가 도착하게 될 시기이다. 다음 주말까지는 그들이 농장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내 머리는 자라고 있다. 회색머리가 점차 갈색으로 변하면서 회색머리는 사라져 가고 있고(그가 침투할 때 회색머리로 변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턱수염도 자라고 있어, 두 달안에 나의 본 모습을 찾게 될 것이다. 더보기
11월10일 - 체 게바라 일기 11월10일 1966년 파충고와 뽐보는 볼리비아인 동료 세라핀과 함께 지역답사에 나섰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멀리 갔었는데 시내줄기가 갈라져 나와 작은 계곡으로 흘러 들어가는 개천지류를 발견했다. 나머지 시간에 그들은 집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알가라냐스의 우전수가 장 보러 갔던 사람들을 태우고 돌아오다가 그들은 보게 되었다. 나는 굉장히 화를 냈고 내일 즉시 우리는 정글로 이동해서 영구적인 캠프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투마이니는 농장 고용인으로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저들의 눈에 띄어도 괜찮았다. 상황은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 저들이 우리 동료들만이라도 데려올 수 있게 할런지 알아 봐야겠다. 이곳에 그들이 있어야 나는 더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더보기
11월 9일 - 체 게바라 일기 11월 9일 1966년 평온한 날. 투마이니와 나는 나까와주강의 흐름을 거슬러 그 지역을 답사했으나 우리는 그 강의 水源에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강은 좁다란 계곡을 통해서 흐르고 있었고 그 지역은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곳이다. 적절한 훈련만 한다면 꽤 오랫동안 그 곳에 머물 수 있을 것 같다. 더보기
11월 8일 - 체 게바라 일기 11월 8일 1966년 우리는 그 집(일반적으로 알려진 양철지붕의 집을 가리킴)으로부터 100미터 가량 떨어진 시냇가 정글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온갖 벌레들이 물지는 않았으나 성가시게 굴었는데 그 가운데에도 모기와 진드기가 더욱 극성이었다. 비고테스가 알가랴냐스(게릴라 농장과 인접해 있는 농장의 소유주로 전에 까미리 시장도 역임한바 있는 자)의 도움으로 그의 찦차를 건져냈다. 그리고 그에게서 얼마간의 돼지와 병아리를 사기로 약속했다고 했는데 나는 그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조사하려 했으나 다음 주 제2진이 도착할 때까지 보류해 두기로 했다. 더보기
11월 7일 - 체 게바라 일기 11월 7일 1966년 오늘로서 새로운 무대가 전개된다. 우리는 밤중에 농장에 도착했다. 여행은 순조로왔다. 코차밤바에 도착하자 적절하게 위장한 파충고(파쵸의 異名)와 나는 접선을 시도했고 그 곳에서 두 대의 찦차에 분승하여 이틀 동안 달렸다. 농장 가까이에 접근하자 우리는 차를 세우고 그 중 한 대만을 계속 사용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코카인 제조업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웃 땅주인의 의시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농장으로 가는 도중 두 번째의 길로 차를 몰던 비고테스라는 청년이 나의 정체를 알고 놀라는 바람에 그만 벼랑 끝으로 차를 몰아 하마터면 절벽아래로 추락할 뻔 하였다. 구덩이에 빠진 차를 그대로 버려두고 우리는 농장까지 20킬로미터 가량을 걸어 자정이 지나서야 농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더보기
Che Guevara's Diary 게바라의 볼리비아에서의 일기이다. 1966년 11월 7일 부터 1967년 10월 7일 까지의 일기이다. 길지 않은 1년간의 볼리비아 혁명을 주도하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던 그의 기록이다. 혁명이 그를 필요로 했던 것이라기 보다는 그가 혁명을 필요로 했다. 그것이 없다면 그는 무대에서 이탈되고 역사의 미아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