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13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13일 1966년 화킨, 카를로스, 의사가 롤란도, 브라올리오와 합류하기 위해 떠났다. 뽐보는 당에 돌아오도록 명령을 받고 그들과 동행했다. 나는 먼젓 번 오솔길을 덮고 새 길을 내도록 명령했다. 두 번째 것은 첫 번과 같은 장소에서 시작되나 강쪽으로 빠지도록 했다. 며칠간 비아챠의 자기 집에 가게 될 아플리나르와 애기했다. 그의 가족을 위해 나는 돈을 주었고 비밀을 지키도록 일렀다. 코코는 해질녁에 떠났다. 새벽 3시에 호각 소리와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늑대가 짖어대 경보를 울렸다. 그것은 산림 속에서 길을 잃은 코코였던 것이다.. 더보기
12월12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12일 1966년 대원들에게 일인 지휘 체계를 강조하고 볼리비아 동지들이 다른 노선을 체택함으로써 규율을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경고했다. 나는 임무를 부여했다. 화킨 - 군사 부지휘관 롤란도와 인티 - 인민위원 알레잔드로 - 작전 뽐보 - 홍병 인티 - 재정 나토 - 보금 및 병기(잠정 기관) 모로 - 의무 코코가 카라나비에서 돌아왔다. 그곳에서 그는 필요한 양식을 샀는데, 그가 사들이는 양을 보고 몇몇 라구니라스의 주민들이 놀라운 눈길을 보냈다고 했다. 후에 뽐보와 마르코스가 도착. 마르코스는 나눔를 자르다가 눈썹을 다쳐 두 바늘 꿰맸다. 더보기
12월11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11일 1966년 사고없이 하루가 지났다. 저녁에 코코가 파피와 같이 도착했다. 코코는 알레잔드로, 아르투로, 그리고 카를로스라는 볼리비아인도 데리고 돌아왔다. 다른 때와 같이 찦 한 대는 도로에 남겨 두었다. 그 다음 그들은 의사, 모로, 베니그노 그리고 캄바(Camba - 산타 크루즈 지방 주민들의 별명)들을 데리고 왔다. 레난과 따니아를 데려오기 위해 파피가 두 번 더 여행하도록 조치했다. 재정문제와 재고품 문제도 논의했다. 나는 산체스를 원조할 1,000달러를 내놓았다. 그는 트럭을 확보하고 우리는 찦 한대를 따니아에게 팔고 또 한 대는 우리가 사용할 것이다. 치노는 매우 고무적이 되어 쿠바로 떠났다. 그와 함께 가지 않고 까미리로 가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남았다. 파피는 라 파즈로 .. 더보기
12월 8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 8일 1966년 인티와 나는 시내 윗쪽으로 올라갔다. 미켈과 우르바노는 아직도 굴진 중. 오후에 아폴리나르가 미켈과 교대했다. 해질 녁에 마르코스, 뽐보, 파쵸가 돌아왔는데 파쵸는 그들보다 뒤에 처졌고 피로에 지쳐 있었다. 마르코스는 그가 회복도지 않았다면, 전위대에서 빼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동굴에 이르는 비밀통로를 '스케치 II'에 기록했다. 더보기
12월 7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 7일 1966년 미켈과 아폴리나르가 적당한 자리를 발견, 동굴 발굴 작업을 햇다. 연장이 좋지 못햇다. 오늘로 여기에 온지 한 달째 접어든다. 그러나 나는 편의상 매달 말에 전면적인 분석을 기록할 작정이다. 더보기
12월 6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 6일 1966년 아폴리나르, 인티, 미켈, 우루바노 등과 함께 두번째 동굴을 만들러 나갔다. 우리는 11시쯤 시냇가에 도착했다. 땅은 모두가 암석이었고 시내가 말라 버리면 물은 가파른 암석 둑 사이로 흐른다. 우리는 내일 계속 답사하기로 했다. 인티와 우르바노는 사슴 사냥을 나갔다. 우리는 식량이 모자랐고 금요일까지 먹을 양식이 있어야 했다. 더보기
12월 1일 - 체 게라바의 일기 12월 1일 1966년 투마이니, 우르바노, 인티와 나는 강을 측량하고 다음 캠프가 설치될 시내를 답사하기 위하여 나섰다. 투마이니는 넘어져서 발목을 삐었다. 우리는 강을 측량한 다음 밤에 캠프로 돌아왔다. 코코는 치노를 만나기 위해 산타 크루즈로 떠났다. 더보기
11월 - 이달의 분석 - 체 게바라의 일기 11월 - 이달의 분석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예정 인원의 절반이 모였다. 비록 몇 사람이 늦었지만 다들 별 사고없이 도착했다. 라카르도의 협력자들은 어떤 혜택도 바라지 않고 참여할 것이다. 지금 계획은 나머지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 볼리비아인을 20명선까지 증가시키는 것, 그 다음 작전을 개시하는 것 등이다. 우리는 아직도 몬제(에스타니슬라오의 本名)의 반으을 체크해 봐야 하며 게바라(모이세스 게바라 로드리게즈라는 볼리비아 노동 지도자를 체 게바라는 이렇게 적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더보기
11월29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1월29일 1966년 투마이니, 우르바노, 인티와 나는 강을 측량하고 다음 캠프가 설치될 시내를 답사하기 위하여 나섰다. 투마이니는 넘어져서 발목을 삐었다. 우리는 강을 측량한 다음 밤에 캠프로 돌아왔다. 코코는 치노를 만나기 위해 산타 크루즈로 떠났다. 더보기
11월28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1월28일 1966년 아침까지도 돌아오지 않던 요르게는 코코와 함께 돌아왔다. 그들은 돈 렘베르토의 집에서 밤을 지내기로 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좀 무책임했다. 오후에 볼리비아 동포들을 한 곳에 모아, 20명을 보내겠다는 페루 측의 제안을 알려주었다. 그들 각자들은 받아 들일 것을 동의 하였으나 행동이 개시된 이후라서 단서를 달았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