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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일기

01월20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월20일 1967년 나는 진지를 검열하고 어제 밤에 설명했던 방위계획을 수행하도록 명령했다. 이것은 강과 가까운 지역의 신속한 방어를 위한 것이다. 더보기
01월19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월19일 1967년 방어시설 설치작업과 캠프 손질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미겔은 말라리아의 특징인 고열이 있어 내려왔다. 나는 하루종일 통증이 있었는데 심하지 않았다. 아침 8시에 낙오되었던 4명(전날 비가 억세게 내렸다 - 註)이 아주 좋은 쵸클로스(옥수수)를 가지고 도착했다. 그들은 지난 밤을 불가에 모여 앉아 밤을 지샜다고 한다. 강물이 줄었으니까 인티의 총을 찾았으면 좋겠다. (전날의 빗속에서 총을 물에 빠뜨렸다 - 註) 오후 4시. 루비오와 페드로가 다른 캠프의 초소로 교대하러 떠났을 때, 엘메디코가 와서 경찰이 다른 캠프에 왔었다고 알려주었다. 페르난데즈 주임과 다른 4명의 순경이 사복을 입고 세낸 찦차로 코카인공장을 보러 왔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집을 돌아보고 램프용 카바이트 같은 눈에 띄는.. 더보기
01월06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월6일 1967년 아침에 마르코스, 화킨, 알레잔드로, 인티와 나는 초목이 별로없는 단단한 땅으로 나갔다. 거기서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다. 마르코스는 캄바, 파쵸와 함께 우측으로 눈에 띄지 않게 냥까와 주로 나가고 미겔은 브라울리오, 아니세토와 같이 중심도로로 나가 적절한 루트를 찾는다. 화킨은 베니그노, 인티와 같이 프리아스강으로 나가는 루트를 찾는다. 지도에 의하면 그 강은 단단한 땅 다른 편 팜파델 티그레(초원)로 보이는 곳을 냥까와주와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로로는 오후에 2,000페소스를 주고 산 두 마리의 노새를 끌고 왔다. 길이 잘 들여져 있었고 튼튼하다. 보급품은 브라울리오와 페드로에게 보냈으므로 노새들은 내일 떠날 수 있다. 카를로스와 엘 메디코는 그들과 교대할 것이다. 클라스.. 더보기
01월02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월2일 1967년 아 침 나절을 나는 무전으로 서신을 송신하는 데 보냈다. 산체스, 코코 그리고 따니아는 피델의 연설이 끝나자 오후에 떠났다. 더보기
01월01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월1일 1967년 아침에 몬제가 나와 의논도 없이 1월 8일자로 당지도직 사임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의 사명이 일소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수대로 향하는 사람처럼 떠났다. 오후에 나는 전체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몬제의 태도를 설명하고 햑명을 원하는 모든 사람과 우리는 연합할 것이라고 알렸다. 또 볼리비아 동료들에겐 도덕적 번민을 해야하는 어려운 순간과 날들이 있을 것임을 예언했다. 우리들은 우리들 모두의 뮨제를 집단토론이나 인민위원회를 통하여 해결하도록 노력하자고도 나는 말했다. 나는 따니아에게 아르헨티나로 가서 마우루시오와 오제니오를 만나 보고 그즐을 이곳으로 불러 오라고 지시했다. 산체스에게는 임무를 부여하고 우리는 로돌포, 로욜라, 옴베르토를 라 파즈에, 로욜라의 자매 가운데 하나를 까미.. 더보기
12월 - 이달의 분석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 - 이달의 분석 쿠바인 팀의 편성은 성공적이었고 전체의 사기도 좋았으며 몇가지 작은 문제만 있었을 뿐이었다. 몇 안되지만 볼리비아인들은 훌륭하다. 몬제의 태도는 한편으로는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으나 또 한편으로는 정치적 개입으로 투처 나를 자유롭게 함으로써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다음 단계는 더 많은 볼리비아인들의 호응을 위해 게바라(볼리비아 노동지도자 모이세르를 지칭함 - 註)와 아르헨티나인 마우리시오, 요자미 등과 협의해야 한다. 더보기
12월31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31일 1966년아침 7시 30분에 몬제가 이곳에 도착했다. 나는 인티, 투마, 우르바노, 아르투로와 같이 마중을 나갔다. 회합은 정중했으나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 이면에 도사린 긴장의 원인은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이 곳에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이다. 몬제와 같이 온 이들은 신참자 판 비노, 나의 지시를 받으러 온 따니아 그리고 여기 머물게 될 리카르도이다. 몬제와 대화는 처음에 일반적인 것에서 시작되어 급기야는 그의 근본적인 전제로 발전했는데 그는 세 개의 기본조건을 제시했다. 1. 그는 당지도자의 지위를 사임하고 간부들을 투쟁에 참여시킬 것이다. 2. 혁명이 볼리비아에서 수행되고 있는 한 그는 정치 및 군사지휘관이 될 것이다. 3. 남아메리카 제(諸) 정당으로 하여금 혁명운.. 더보기
12월28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28일 1966년 우리가 캠프를 향해 떠날 때 우르바노와 안토니오가 나를 찾으러 왔다. 마르코스가 미겔과 같이 캠프로 가는 단단한 토질의 길을 다듬으러 나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베니그로와 뽐보는 우리가 지나왔던 길로 나를 찾으러 나섰다 한다. 내가 캠프에 도착했을 때 마르코스와 미겔을 발견했는데 그즐은 캠프까지 갈 수 가 없어 들판에서 잠을 잤다는 것이다. 마르코스는 다른 친구들이 나를 대우하는 방식이 못마땅하다고 불평했다. 다른 친구들이란 아마 화킨, 알레잔드와 그 의사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인티와 카를로스는 인가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오로지 폐가를 하나 발견했을 뿐인데 그곳은 지도에 표시된 아키가 아니었던 것 같다. 더보기
12월27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27일 1966년 투마와 함께 마르코스를 찾으러 나섰다. 오후 7시, 우리는 캠프에 도착했다. 마르코스가 지난 밤에 여기서 머룰렀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알리러 아무도 보내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마르코스가 가능한 통로에 관하여 그들에게 알였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난타된 듯한 찦을 보았다. 로로는 까미리로 부속품을 구하러 나갔다. 나토에 의하면 그가 운전대에서 잠들었다는 것이다. 더보기
12월26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26일 1966년 인티와 카를로스는 지도에 나타난 야키로 가는 길을 답사하러 나갔다. 약 이틀 걸릴 것이다. 롤란도, 알레잔드로, 뽐보는 동굴에서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매우 히든 작업이다. 파쵸와 나는 미겔이 만든 통로를 검사하러 나갔다. 동굴로 가는 통로는 위장이 잘되어 있어 쉽사리 찾아낼 수 없다. 오늘은 뱀 두마리를 잡았고 어제도 한 마리 잡았었다. 뱀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투마, 아르투로, 루비오와 안토니오는 사냥을 나갔고 브라울리오는 나토와 다른 캠프에서 보초근무 중이다. 그즐은 로로가 차를 몰다 전복했다는 것과 몬제의 도착을 전했다. 통로 손질을 하러 떠난 마르크스, 미겔, 베니그로가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