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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일기'에 해당되는 글 46건

  1. 01월20일 - 체 게바라의 일기
  2. 01월19일 - 체 게바라의 일기
  3. 01월06일 - 체 게바라의 일기
  4. 01월02일 - 체 게바라의 일기
  5. 01월01일 - 체 게바라의 일기
  6. 12월 - 이달의 분석 - 체 게바라의 일기
  7. 12월31일 - 체 게바라의 일기
  8. 12월28일 - 체 게바라의 일기
  9. 12월27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0. 12월26일 - 체 게바라의 일기

카스트로 다양한 지성 승리 이달의 분석 인생관 장재준 쿠바를 떠나며 권리 리얼리스트 핀셋 정운영 나의 연인 치치나에게 팬티 체 게바라 말의 힘 직시 행복한 혁명가 먼 저편 체 게바라의 일기 목욕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성공론 사르트르 아내 그 곳에서는 그들처럼 내 안의 파쇼 달빛 참된 삶 내가 살아가는 이유 체 게바라의 유언 체 게바라의 시체 탄자니아 편지 볼리비아 일기 온건 나의 손끝 싸움의 이유 체 게바라 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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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월20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월20일 1967년

는 진지를 검열하고 어제 밤에 설명했던 방위계획을 수행하도록 명령했다. 이것은 강과 가까운 지역의 신속한 방어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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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월19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월19일 1967년
 

어시설 설치작업과 캠프 손질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미겔은 말라리아의 특징인 고열이 있어 내려왔다. 나는 하루종일 통증이 있었는데 심하지 않았다. 아침 8시에 낙오되었던 4명(전날 비가 억세게 내렸다 - 註)이 아주 좋은 쵸클로스(옥수수)를 가지고 도착했다. 그들은 지난 밤을 불가에 모여 앉아 밤을 지샜다고 한다. 강물이 줄었으니까 인티의 총을 찾았으면 좋겠다. (전날의 빗속에서 총을 물에 빠뜨렸다 - 註)

오후 4시. 루비오와 페드로가 다른 캠프의 초소로 교대하러 떠났을 때, 엘메디코가 와서 경찰이 다른 캠프에 왔었다고 알려주었다. 페르난데즈 주임과 다른 4명의 순경이 사복을 입고 세낸 찦차로 코카인공장을 보러 왔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집을 돌아보고 램프용 카바이트 같은 눈에 띄는 이상한 것들을 체크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로로의 피스톨을 뺏고 모제르를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흥정을 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피스톨은 까미리에서 <너무 떠들지 말고 나하고 애기하면> 찾을 수 있다고 페르난데즈는 말했다.

로로는 밀정임에 틀림없을 발레그란데 사람과 알가라냐즈에게 냉정하게 행동하도록, 그리고 총을 찾으러 간다는 구실로 까미리로 가서 코코와 접선하도록 지시받았다. (그가 자유로운 것이 의심스럽다. 그들은 가능한 한 슾 속에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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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월06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월6일 1967년
 

침에 마르코스, 화킨, 알레잔드로, 인티와 나는 초목이 별로없는 단단한 땅으로 나갔다. 거기서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다. 마르코스는 캄바, 파쵸와 함께 우측으로 눈에 띄지 않게 냥까와 주로 나가고 미겔은 브라울리오, 아니세토와 같이 중심도로로 나가 적절한 루트를 찾는다. 화킨은 베니그노, 인티와 같이 프리아스강으로 나가는 루트를 찾는다. 지도에 의하면 그 강은 단단한 땅 다른 편 팜파델 티그레(초원)로 보이는 곳을 냥까와주와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로로는 오후에 2,000페소스를 주고 산 두 마리의 노새를 끌고 왔다. 길이 잘 들여져 있었고 튼튼하다. 보급품은 브라울리오와 페드로에게 보냈으므로 노새들은 내일 떠날 수 있다. 카를로스와 엘 메디코는 그들과 교대할 것이다. 클라스가 끝난 후에 나는 게릴라의 자질과 더 엄격한 규울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우리의 사명은 무엇보다도 강철같은 모범적 핵심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공부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그 다음 나는 간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화킨, 마르코스, 알레잔드로, 인티, 룰란도, 뽐보, 엘 메디토, 나토 그리고 리카르도 등이다.

나는 왜 화킨을 부지휘관으로 결정했는가에 대해 마르코스가 반복해서 저질렀던 실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년 정초에 미겔과의 사이에 있었던 불상사에서 화킨이 취했던 태도를 나는 비판했고 이어서 우리 조직을 향상시키기 위해 성취해야할 몇 가지 과제를 설명했다. 리카르도는 따니아가 있는 자리에서 있었던 이반과의 불상사, 즉 그들은 계속해서 추잡한 말을 사용했고 자기가 이반더러 찦 밖으로 나오라고 명령했었다는 것을 고백했다. 동료간의 불화는 우리의 작업을 해치고 있다.

(그 동안에도 정글기지 구축작업은 계속된다. 16일엔 알레잔드로가 말라리아 증세를 보인다. 인근 농장주인 이기리냐즈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게릴라들이 눈치챈다. -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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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월02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월2일 1967년


침 나절을 나는 무전으로 서신을 송신하는 데 보냈다. 산체스, 코코 그리고 따니아는 피델의 연설이 끝나자 오후에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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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월01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월1일 1967년

침에 몬제가 나와 의논도 없이 1월 8일자로 당지도직 사임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의 사명이 일소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수대로 향하는 사람처럼 떠났다.

오후에 나는 전체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몬제의 태도를 설명하고 햑명을 원하는 모든 사람과 우리는 연합할 것이라고 알렸다. 또 볼리비아 동료들에겐 도덕적 번민을 해야하는 어려운 순간과 날들이 있을 것임을 예언했다.

우리들은 우리들 모두의 뮨제를 집단토론이나 인민위원회를 통하여 해결하도록 노력하자고도 나는 말했다.

나는 따니아에게 아르헨티나로 가서 마우루시오와 오제니오를 만나 보고 그즐을 이곳으로 불러 오라고 지시했다. 산체스에게는 임무를 부여하고 우리는 로돌포, 로욜라, 옴베르토를 라 파즈에, 로욜라의 자매 가운데 하나를 까미리에, 산타 크루즈에는 깔비몬테를 남겨놓기로 결정했다. 미토는 수크레 지구를 여행하면서 그 자신에게 적절한 지역을 살필 것이다. 로욜라는 자금통제 책임저 중 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녀에게는 80,000이 보내어 지는데 그 중 20,000은 까리몬테가 트럭을 구입하는 데에 사용할 비용이다. 산체스는 모이세스 게바라와 접선해서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코코는 산타 크루즈로 가서 카를로스의 형을 만나, 그에게 아바나로부터 오는 세 사람을 맞이하는 책임을 위탁할 것이다. 나는 피델에게 메세지를 썼는데 서류 CZO#2에 삽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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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 이달의 분석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 - 이달의 분석

바인 팀의 편성은 성공적이었고 전체의 사기도 좋았으며 몇가지 작은 문제만 있었을 뿐이었다. 몇 안되지만 볼리비아인들은 훌륭하다.

몬제의 태도는 한편으로는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으나 또 한편으로는 정치적 개입으로 투처 나를 자유롭게 함으로써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다음 단계는 더 많은 볼리비아인들의 호응을 위해 게바라(볼리비아 노동지도자 모이세르를 지칭함 - 註)와 아르헨티나인 마우리시오, 요자미 등과 협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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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1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31일 1966년

침 7시 30분에 몬제가 이곳에 도착했다. 나는 인티, 투마, 우르바노, 아르투로와 같이 마중을 나갔다. 회합은 정중했으나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 이면에 도사린 긴장의 원인은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이 곳에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이다. 몬제와 같이 온 이들은 신참자 판 비노, 나의 지시를 받으러 온 따니아 그리고 여기 머물게 될 리카르도이다.

몬제와 대화는 처음에 일반적인 것에서 시작되어 급기야는 그의 근본적인 전제로 발전했는데 그는 세 개의 기본조건을 제시했다.

1. 그는 당지도자의 지위를 사임하고 간부들을 투쟁에 참여시킬 것이다.
2. 혁명이 볼리비아에서 수행되고 있는 한 그는 정치 및 군사지휘관이 될 것이다.
3. 남아메리카 제(諸) 정당으로 하여금 혁명운동을 지지하도록 자신이 조정할 것이다. (그는 다글러스 브라보를 그 예로 언급했다.)

나는 첫째 조건에 대해서 그의 생각에 반대할 의사는 없으니 그가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도빌라(모스코바 노선을 따르는 안르헨티나 공산당 지도자 - 註)를 지지하도록 요청한다는 것은 그에게 그 자신의 당 내부에서 봉기를 지지하도록 요청하는 것과 맞먹었다고는 설명했다.

둘째 조건은 어떤 명분을 내걸더라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군사 지휘관이어야 하며 이 문제에 어떠한 모호성도 나는 수락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여기서 토론은 순환논법으로 맴돌게 되었다.

우리는 내가 다시 한 번 그 문제를 고려해 본 뒤에 볼리비아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에 동의했다.

우리는 새 캠프로 건너갔다. 거기서 모든 동료들에게 나와 같이 남든가 아니면 당을 지지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제의했고 모두가 머물러 있겠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이 사실이 그에게는 큰 충격을 준 것처럼 보였다.

정오에 우리는 축배를 들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는 이 날의 역사적 중요성을 지적했다. 나는 이에 답하여 그의 말을 지지하고 이 순간을 대륙 혁명의 새로운 &amp;amp;lt;함성&amp;amp;gt;이라고 외치고 혁명앞에서 우리는 목숨은 아무런 댓가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피델(카스트로 - 註)이 유첨메세지를 나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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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8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28일 1966년

리가 캠프를 향해 떠날 때 우르바노와 안토니오가 나를 찾으러 왔다. 마르코스가 미겔과 같이 캠프로 가는 단단한 토질의 길을 다듬으러 나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베니그로와 뽐보는 우리가 지나왔던 길로 나를 찾으러 나섰다 한다. 내가 캠프에 도착했을 때 마르코스와 미겔을 발견했는데 그즐은 캠프까지 갈 수 가 없어 들판에서 잠을 잤다는 것이다. 마르코스는 다른 친구들이 나를 대우하는 방식이 못마땅하다고 불평했다. 다른 친구들이란 아마 화킨, 알레잔드와 그 의사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인티와 카를로스는 인가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오로지 폐가를 하나 발견했을 뿐인데 그곳은 지도에 표시된 아키가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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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7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27일 1966년

마와 함께 마르코스를 찾으러 나섰다. 오후 7시, 우리는 캠프에 도착했다. 마르코스가 지난 밤에 여기서 머룰렀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알리러 아무도 보내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마르코스가 가능한 통로에 관하여 그들에게 알였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난타된 듯한 찦을 보았다. 로로는 까미리로 부속품을 구하러 나갔다. 나토에 의하면 그가 운전대에서 잠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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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6일 - 체 게바라의 일기

12월26일 1966년

티와 카를로스는 지도에 나타난 야키로 가는 길을 답사하러 나갔다. 약 이틀 걸릴 것이다. 롤란도, 알레잔드로, 뽐보는 동굴에서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매우 히든 작업이다. 파쵸와 나는 미겔이 만든 통로를 검사하러 나갔다. 동굴로 가는 통로는 위장이 잘되어 있어 쉽사리 찾아낼 수 없다. 오늘은 뱀 두마리를 잡았고 어제도 한 마리 잡았었다. 뱀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투마, 아르투로, 루비오와 안토니오는 사냥을 나갔고 브라울리오는 나토와 다른 캠프에서 보초근무 중이다. 그즐은 로로가 차를 몰다 전복했다는 것과 몬제의 도착을 전했다. 통로 손질을 하러 떠난 마르크스, 미겔, 베니그로가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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